교회사의 주요 교리적 선언                <예수선교회http://www.missionchrist21st.com>

교회사는 기독교 발전에 있어서 많은 단계의 어려운 과정들을 거치게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한 어려운 순간마다 교회의 단결과 신앙을 확고히 하기 위하여 신앙고백을 선언하게 되었는데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으로 사도신경(3-4세기), 니케아 신조(A.D. 325), 칼케톤 신조(A.D.451), 영국 감리교회의 25개조 신조, 웨스트민스트 신앙고백(1643-1646, 영국개혁교회와 장로교회), 뉴햄프셔 침례교 신앙고백(1833), 시카고 선언(1978) 등을 예로 들 수 있고 그 외에 아우구스부룩 신앙고백(1530)을 들 수 있을 것 입니다.  그 외에도 현대에 들어서 개신교 복음주의의 좌표를 세워주는 로잔선언, 성경 무오류성에 관한 시카고 선언(1978) 등이 있습니다.

1.     사도신경 과 니케아 신조(3-4세기 및 A.D. 325. 381년 콘스탄티노풀에서 개정)

사도신조: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 아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니케아신조

우리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한분을 믿는다.  그는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이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창조한신 자이다.  우리는 한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그는 하나님의 독생자 이시며, 모든 세상이 있기 전에 하나님 께로부터 나셨으며,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하나님 이시요, 빛으로부터 나온 빛이시요, 참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하나님이시다.  그는 피조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나셨다.  그는 모든 것을 지으신 하나님과 동일 본질을 가지신다.  그는 우리 인간을 위해서 무엇보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하늘에서 내려 오셨고 , 성령에 의하여 동정녀 마리아로부터 몸을 입으시고, 사람이 되사, 우리를 위하여 본디오 빌라도에 의하여 십자가에 달리셨다.  그는 고난을 당하시고 매장 되셨다가 사흘만에 성경의 말씀대로 부활 하셨다. 그는 하늘에 오르사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영광 중에 다시 오셔서  산자들과 죽은 자들을 심판하려 오실 것이다.  그의 나라는 영원 무궁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분이신 성령을 믿는다.  그는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나오셨고,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예배와 영광을 받으신다.  이 성령은 에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다.  우리는 또한 하나요 거룩하고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교회를 믿는다.  우리는 사죄를 위한 한번의 세례만을 인정한다.  우리는 죽은 자들의 부활과 장차 임할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삶을 본다.

2. 아우구스부르그 신앙고백서 (Augsburger Konfession)-1530

아우구스부르그 신조의 배경

    아우구스부르그 신앙고백서는 루터파 교회의 신앙고백서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의의를가지고 있다. 1529 여름 (726- 9 14) 이미 쉬바바흐 신조 (Schwabacher Artikel)라고 알려진 교리 해설문이 루터와 멜랑히톤 등에 의해 준비되어 그해 10월에 제출된 일이 있었다.  그후 추가로 비텐베르그 신학자들인 루터, 멜랑히톤, 요나스, 부겐하겐에 의해 1530 3 27 톨가우 신조(Tolgau Artikel) 작센의 선제후 요한에게 제출하여 인준을 받게되었다. 그기에다 말부르크의 15 조문이 참조되었다. 그후 모든 루터교회를 위한 공동신조가 있는 신앙고백문을 작성하가로 작정하였는데 이에 앞서 로마 교회 신학자 요한 엑크의 "404 논제"라는 것이 공개되어 개혁자들의 입장을 불리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정황 속에서 멜랑히톤은 개혁자들의 변증으로서 28 조항의 아우구스부르그 신앙고백서를 만들게 되었다.  

     "아우구스부르그 신앙고백서" 내용상으로 보아 쉬바바흐 신조가 부분의 골자가 되었고 톨가우 신조가 둘째 부분의 중요 내용이 되었다. 루터는  당시 파문을 받은 중이었으므로 의회에 참석할 없었고 코부르그 (Coburg)성에 머물러 있으면서 서신으로 멜랑히톤의 자문에 응하였다. 비록 루터 자신이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고 직접 쓰지는 않았으나 루터 자신의 입장과 신학을 말해주는 글이다. 멜랑히톤은 1530 6 25 5 황제에게 신앙고백서를 정식으로 봉정하기 바로 직전까지 교정과 수정을 가하였다. 일곱 명의 제후들과 자유도시 대표들에 의한 서명으로 비로서 고백서는 하나의 공적인 신앙고백서로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아우구스부르그 신앙고백서는 다음과 같은 특색이 있다. 첫째, 루터의 강조점이 되었던 신앙에 의한 의인 (義認)으로서 얻을 있는 구원의 강조, 자유의 소중성, 초대 기독교 정신의 계승이다. 둘째, 내용상으로 보아 결코 어떤 새로운 교리는 논하는 것이 아니라 지난 여러 세기를 걸쳐 교회가 가르쳐 기독교 신앙의 중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앙에 의한 의인 (義認) 가르침과 성서의 기본적 교의 (敎義) 재강조한 것이다. 셋째, 모든 항목의 시작은 우리는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es wird gelehret) 문장으로 시작된다. 이러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신앙고백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192)

 

아우구스부르그 신조의 내용

    서문 (생략)

    1 하나님에 관하여 ( Von Gott)

     교회는 일치하여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이른바 하나님의 본질의 통일과 () 관하여 니케야 회의에서 정한 신조는 참된 것이므로 의심없이 믿어야 한다. 영원하시며, 형체가 없으시고, 분리되지 않으시고, 무한한 능력과 지혜와 선하심을 가지시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만물의 창조자와  보존자이신 하나님의 유일한 신적 본질이 존재한다. 그러면서도, 같은 본질과 능력을 가지시고, 아울러 함께 영원하신 성부와 성자와 서령이신 위가 있다. 이러한 조항에 반대하는 마니교, 발렌티누스파, 아리우스파, 유노미어스파 그리고 마호멧교도들을 정죄하여야 한다.

      2 원죄에 관하여  (原罪, Von der Erbsunde)

     우리 교회는 또한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아담이 타락한 이래 자연적인 방법으로 출생한 모든 인간은 죄를 지니고 태어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를 신뢰하지 않으며, 정욕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죄가 세례와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을 정죄하며 영원한 죽음을 가져오게 한다. 우리 교회는 펠라기우스파를 정죄하는데, 이유는 그들이 생래 (生來) 악이 죄라는 것을 부인하며 자기의 힘과 이성으로  하나님 앞에 의롭게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192 Hans Lietzmann, Die Bekenntnisschriften der evangelisch-lutherischen Kirche,  s. 56-137

     3 하나님의 아들에 관하여 (Von dem Sohne Gottes)   

     말씀 하나님의 아들은 축복받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 났으며 위격 안에 분리될 없는 본성인 신성 (神性) 인성 (人性) 가지고 계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신이시고 인간이시다. 그는 성부 하나님과 우리 인간들을 화해시키시고 원죄뿐만 아니라 인간들의 모든 실제적인 죄로 인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음부에 내려가셨다가 일만에 확실히 부활하셨다. 후에 그는 아버지의 우편에 앉으셔서 영원히 통치하시고 그를 믿는 자들의 마음 가운데 성령을 보내어 악마와 죄의 힘에 대항하여 그들을 지키게 하셨다. 사도신조에 나오는 것처럼 그리스도는 자와 죽은자를 심판하시기 위하여 다시 오실 것이다.

    4 의인에 관하여 (義認, Von der Rechtfertigung)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얻는 것은 인간의 업적과 공로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서 가능하고 우리의 죄를 죽음으로서 대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을 있는 것이다.

    5 교직에 관하여 (Vom Predigtamt)

   우리가 믿음을 얻기 위해서 복음을 가르치고 성례전을 집행해야 하는 교직이 제정되었다. 그것은 성령께서 말씀과 성례전이라는 기구를 통해서 주어지기 때문이다. 성령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장소와 시간 가운데 임하시게 되며, 복음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신앙을 일으켜 의로움을 주신다. 여기서 우리는 재세례파 (Wiedertaufer) 정죄하는데 이들은 성령이 외적인 말씀없이 인간 자신의 준비와 공적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주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6 새로운 복종에 관하여 (Vom neuen Gehorsam)

     믿음은 반드시 좋은 열매를 맺게 되며 또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 행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렇게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며 결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된다는 것은 아니다. 죄의 용서와 의인(義認) 믿음에 의하여 가능하기 때문이다. 교부 암부로시우스는 "우리의 공적없이 믿음으로서만 구원받는 것은 하나님의 정하신 뜻이다"라고 말한다.

     7 교회에 관하여 (Von der Kirche)

    유일하고 거룩한 교회는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복음을 순수하게 가르치고 성례전을 올바로 집행하는 성도의 회중이 교회이다. 교회의 참된 통일을 위해서는 복음의 가르침과 성례전의 집행에 관하여 일치하는 것으로 족하다. 인간의 전통, 인간에 의하여 제정된 의식과 예식이 어디서나 같아야 필요는 없다.

     8 교회란 무엇인가? (Was die Kirche sei)

    교회가 원래 성도들과 참된 신자들의 회중이기는 하지만 현세에 있어서 많은 위선자들과 악한 사람들이 신자들 가운데 섞여 있게 되므로 악한 사람이 집행하는 성례전도 유효하다고 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 23: 2)라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대로다. 성례전과 하나님의 말씀은 비록 악한 사람들에 의하여 주어진다 할지라도 효과는 있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정하시고 명령하신 것이므로 그것을 제공하는 사람의 가치에 따라서 효과있게 수는 없다. 우리 교회는 도나투스(Donatus)파와 이런 () 사람들을 정죄한다. 이들은 교회에서 악한 사람들의 교직을 허용하는 것이 합당치 않다고 주장하였으며, 또한 악한 사람들의 교직은 무익하고 전혀 무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9 세례에 관하여 (Von der Taufe)

     세례는 구원을 위하여 필요하며, 세례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총이 인간에게 주어진다. 그리고 아이들도 세례를 받아야 한다. 세례를 통하여 하나님께 바쳐진 아이들은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참여하게 된다. 우리 교회는 유아세례를  거부하고 유아들은 세례 없이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재세례파 사람들을 배격한다.

      10 성만찬에 관하여 (Vom heiligen Abendmahl)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참으로 임재하며 성만찬을 받는 사람들에게 분배된다고 가르친다. 아우러 우리 교회는 이와 달리 가르치는 사람들의 주장을 거부한다.

      11 죄의 고백에관하여 (Von der Beichte)

     고백할 때에 모든 죄를 낱낱이 열거할 필요는 없으나 개인적인 사면(赦免, absolutioprivata) 교회에서 보존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누구리요?" (시편 19: 12)라고 시편에 기록되어 있듯이 모든 죄를 열거하기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12 회개에 관하여 (Von der Busse)

     세례를 받은 후에 타락한 사람들을 위해서 언제든지 그들이 회개할 죄의 용서가 있다. 그리고 교회는 이와 같이 회개하는 사람에게 사면해야 한다. 회개는 원래 다음의 가지 부분으로 성립된다. 하나는 통회인데 죄를 알게 되어 양심에 찔림을 느끼는 공포이며, 다른 하나는 믿음이다. 믿음은 복음이나 죄의 용서에서 유래하며 그리스도로 인하여 죄사함을 받는 것을 믿고 양심을 위로하며 공포로부터 양심을 해방시킨다. 이리하여 회개의 열매인 선행이 반드시 따라 오게된다.

     우리 교회는 의롭게 사람이 성령을 상실할 있다는 것을 부인하는 재세례파를 배격하며, 아울러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이생에서 죄를 범할 없을만치 아주 완전하게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배격한다. 그리고 세례를 받은 후에 타락한 사람들이 비록 회개한다고 할지라도 그들을 사면하지 않는다고 하는 노바티우스 (Novatiut)파도 정죄한다.

      13 성례전 사용에 관하여 (Vom Gebrauch der Sakrament)

     성례전은 사람들 가운데서 단순히 신앙고백의 표시가 되게 뿐만 아니라 특히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의 표시와 증거가 되게 하기 위하여 제정되었으며 또한 성례전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일깨우고 굳게 하기 위하여 제정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례전을 통하여 주어지고 선언되는 약속을 믿을 있는 믿음이 더해지도록 역시 성례전을 사용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성례전이 그의 외적인 행위 (ex opere operato)로써 의롭게 한다고 가르치며 성례전을 사용할 죄의 용서를 믿는 믿음이 필요하다고 가르치지 않는 사람들을 배격한다.

     14 교회의 직제에 관하여 (Von Kirchenregiment)

    우리교회는 누구나 정식으로 부름을 받지 않은 사람이 아니면 아무도 교회에서 공적으로 가르치거나 성례전을 집행하지 못한다고 가르친다.

     15 교회의 규정들에 관하여 (Von Kirchenordnungen)

    특별한 성일과 축일 같은 것은 죄와는 관계 없이 지킬 있으며, 또한 교회내의 평화와 좋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유익한 것은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이것들을 지키는 것이 마치 구원을 위하여 필요한 것처럼 여겨져 양심을 억압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한다. 그리고 하나님을 달래며 그의 은총을 얻을 있도록 만들고 또한 죄를 보상하기 위하여 제정된 인간의  전통은 모두 복음과 믿음의 교리에 배치되는 것이라고 역시 경고한다. 그러므로 은총을 자력(自力)으로 얻어 보려고 하는 것이나, 죄를 보상하기 위하여 제정된 식물이나 특정일 같은 것에 관한 서약과 전통은 무용하며 복음에 배치되는 것이다.

     16 사법 (司法) 세속 직무에 관하여 (Von der Polizei und weltichem Regiment)

    공민 생활에 대한 합법적인 규정들은 하나님의 선하신 업적이다. 크리스챤이 공직을 가지고 재판장이 되거나, 국법이나 다른 현행 법령에 따라 사건을 판결하고, 정당한 벌을 주고, 정당한 전쟁에 종군하고, 군인으로서 봉사하고 법적인 계약을 체결하고, 재산을 소유하고 재판관이 요구할 서약하고 또한 자녀들을 혼인하게 하는 등을 모두 정당한 일이다.

    우리 교회는 크리스챤에게 이러한 공직을 금하는 재세례파를 배격한다.

     17 심판을 위해 오실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하여 (Von der Wiederkunft Christizum Gericht)

    리스도께서 세상 끝날에 심판하시기 위하여 나타나셔서 모든 죽은 자들을 일으키실 것이다. 그는 경건하고 선택받은 자들에게는 영원한 생명과 기쁨을 주실것이지만 불경건한 자들과 악마들에게는 끝없는 고통을 받도록 정죄하실 것이다.

    우리 교회는 정죄받은 자들과 악마에 주어지는 징벌에 끝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재세례파 사람들을 배격한다. 그리고 우리는 죽은 자들이 부활하기 전에 경건한 자들이 세상나라를 점유하고, 불경건한 자들은 어디서나 억압당하리라고 하는 유대교적인 견해를 유포시키는 사람들도 역시 정죄한다.

     18 자유의지에 관하여 (Von freien Willen)  

    인간의 의지는 사회 정의를 택하고 이성이 파악할 있는 일들을 행할 있는 자유를 어느정도 가졌다고 본다. 그러나 인간의 의지는 성령이 없이는 결코 하나님의 (), 영적인 의를 행할 능력을 가지지 못한다. 왜냐하면 자연인은 하나님의 영적인 일을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의는 말씀을 통하여 성령을 받을 마음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어거스틴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사람은 이성의 판단 기능인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으로 있는 모든 일들은 세상에 관계된 일이지 하나님에 관계된 일을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의지가 없이는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 교회는 펠라기우스파 그와 유사한 파들을 정죄한다. 그들은 성령 없이 자연적인 능력만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할 있고, 또한 행위의 본질에 미칠 있는 정도까지 하나님의 계명을 행할 있다고 가르친다.

     19 죄의 원인에 관하여 (Von Ursache der Sunde)

    하나님께서는 자연을 창조하시고 보존하시지만, 죄의 원인은 악한 악마와 불경건한 자들에 의하여 것이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악인의 의지는 하나님을 배척한다.

     20 믿음과 선행에 관하여 (Vom Glauben und  guten Werken)

    우리의 행위는 인간을 하나님과 화해시키거나 죄의 용서, 은총 의를 얻도록 하지 못한다. 이런 것은 홀로 아버지 하나님과 화해시키시기 위하여 중보자와 화해자가 되신 그리스도로 인하여 은총 가운데 받아진다는 것을 믿을 믿음에 의해서만 얻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행위로써 하나님의 은총을 얻게 된다고 자신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리스도의 공적과 은총을 무시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교사들은 선행으로 은총을 얻는다는 기대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 행할 필요가 있다고 가르친다. 죄의 용서를 받을 있는 것은 다만 믿음 뿐이며, 밖의 아무것도 있을 없다. 그리고 성령이 믿음을 통해 주어지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은 새로워지고 선을 행할 있도록 새로운 의향을 가지게 된다. 암부로시우스는 "믿음은 선한 의지와 바른 행위의 어머니이다"라고 말한다.

 

    21 성자 숭배에 관하여 (Vom Dienst Heiligen)

    성자들의 유물은 우리가 각기 맡은 직책에 따라 그들의 믿음과 선행을 본받도록 우리 가운데 기념으로 있다. 그러나 성서는 우리 앞에 중보자, 화해자, 대제사장 중재자로서 그리스도 분만을 두며, 성자에게 기도드리거나 성자의 도움을 구하는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기도드려야 한다. 그는 우리의 기도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22 성만찬의 형태에 관하여 (Von beider Gestalt des Sakrament)

    성만찬에 있어서 떡과 포도주 가지를 평신도에게 주도록 되어 있다. 이런 관습을 따르는 것은 "너희가 이것을 마시라" (26: 27) 주님의 명령에 의한 것이다. 말씀 가운데서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이 마셔야 잔에 대하여 분명히 명령하신다. 그리고 이것은 사제들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이라고 누구든지 말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바울은 고린도전서 11 20 이하에서 모든 회중이 가지를 사용한 것으로 생각되는 예를 들어주고 있다. 관습이 교회에서 오랜 동안 존속해 왔으나 어느 때에 또는 누구에 의하여 변화 되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23 사제의 결혼에 관하여 (Vom Ehestand der Priester)                         

    욕망을 제어하지 못한 사제들에 관하여 공통적인 불평이 있었다. 그러한 이유로 교황 피우스2 (Pius Ⅱ, 1458-1464) 사제들에게 결혼을 금한 어떤 이유가 있었으리라 보겠다. 그러나 플라티나 (Platina, 이탈리아의) 이런 취지로 기록해 준다. 우리 사제들은 이러한 공공연한 추문을 피하려 하기 때문에 아내를 얻었으며, 결혼을 하는 것이 그들에게 합당한 일이라고 가르쳤다. 첫째로 바울이 고린도전서 7 2절과 9절에서 말하기를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라" 하며 또한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으리라" 한다. 둘째로 그리스도께서 마태복음 19 11절에서 말씀하시기를 "사람마다 말을 받지 못한다" 하심으로써 모든 사람이 독신 생활로 지내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고 가르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번성하게 하시기 위하여 인간을 창조했기 때문이다. ( 1: 28). 더욱이 하나님의 특별한 은사와 역사 (役事) 없이 인간의 힘으로 자신의 피조성 (被造性) 변경시킬 능력이 없다. 그러므로 독신으로 지내는 것이 적합하지 않는 사람들은 결혼을 해야 한다. 인간의 어떤 법이나 서약도 하나님의 계명과 제돌를 () 돌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써 사제들은 아내를 얻는 것이 그들을 위하여 합당한 일이라 가르친다.

    고대의 교회에서는 사제들이 결혼한 남자들이었음이 분명하다. 바울 사도가 디모데전서 3 2절에서 말하기를 "감독은 아내의 남편이 도며"라고 것을 보아도 있다. 그리고 독일에서는 불과 400년전에서부터 비로서 사제는 독신생홀로 지내야 한다고 무리하게 강요받았다.

     24 미사에 관하여 (Von der Messe)

    우리들의 교회는 미사를 폐기했다고 그릇되게 비난을 받고 있다. 사실은 미사가 우리 가운데서 보존되고 있으며 최고의 존경을 받으면서 거행되고 있다. 대부분의 관습적인 의식들도 보존되고 있으며, 다만 라틴어로 노래 부분들만이 여기 저기 독일어로 옮겨졌을 뿐이다. 그것은 민중을 가르치기 위하여 첨부한 것이다.

    미사가 부끄러울 정도로 속화했고 또한 돈벌이를 위하여 이용되어 왔다는 것이 오랜 동안 선량한 사람들의 공공연하고 매우 슬픈 불평이 되어 왔음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이런 악폐 (惡弊) 모든 교회에 얼마나 널리 퍼져 있고, 어떠한 사람들에 의하여 미사가 단순히 수입과 급료만을 위하여 거행되며 또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교회 법규에 어긋나게 미사를 행하는가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은 성만찬을 적합하지 않게 취급하는 사람들을 엄히 경고하여 말하기를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고전 11: 27) 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제들이 이러한 죄에 대하여 경고했을 보통미사(missa privata, 사제에 의하여 개인적으로 매일 행해지는 미사) 어느 것이나 돈벌이를 위해서 밖에 거행되지 않음으로 우리 가운데서는 폐기되고 말았다.

     25 죄의 고백에 관하여 (Von der Beichte)

    우리들의 교회는 죄의 고백에 관하여 죄를 일일이 열거할 필요가 없고, 또한 모든 죄를 세심하게 열거하는 번뇌로써 양심을 무겁게 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친다. 이유는 모든 죄를 세밀히 서술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만일 세밀히 서술된 죄에는 아무 죄도 용서받지 못한다면 양심은 전혀 평화를 찾지 못할 것이다. 많은 죄들은 수도 없고 기억할 수도 없다. 고대 저술가도 죄를 일일이 열거할 필요가 없다고 증언한다. 교부 크리소스톰은 " 죄는 기도로써 심판자이신 하나님 앞에서 고백하라. 과오는 혀로 하지 말고, 양심의 기억으로 고백하라" 하였다. 그리고 교회 법규 주석서 난외의 ()에도 (참회에 관하여: De Poenitentia, Dist. V.chap. "Consideret")죄의 고백은 성서에 의하여 명령된 것이 아니고 교회에 의하여 제정된 인간의 권리에  속한 것으로 되어있다.

 

    26 음식물의 구분에 과하여 (Von Unterschied der Speise)

    음실물의 구별이나 그와 비슷한 전통이 하나님의 은총을 얻는 유익한 업적이고 또한 죄를 보상할 있다고 하는 점은 교회에서 가르치는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새로운 의식과 새로운 종교제도와 새로운 축일과 새로운 금식이 제정되었고 교회의 교사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얻기 위한 필요한 예배로서 이러한 행위를 엄격히 시행하였다.

    여러 가지 전통에 대한 이런 견해로 인해 교회 안에 많은 해로운 일들이 생겨났다. 첫째는 은총의 교리와 믿음에 의에 관한 교리가 이것으로 불분명하게 되었다. 둘째로 이러한 전통은 하나님의 계명을 흐리게 하였다. 왜냐 하면 전통은 하나님의 계명보다 훨씬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셋째로, 전통은 양심에   휘험을가져왔다. 왜냐하면 모든 전통을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러한 전통의 준수가 필요한 예배 행위 가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교사들은 우리가 인간의 전통의 준수로 인하여 은총을 얻거나 의롭게 없다고 가르쳤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준수가 필요한 예배 행위라고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27  수도사의 서약에 관하여 (Von Klostergelubden)

    수도사의 서약에 대해서 말하자면 원래 어거스틴 당시 수도원은 자발적인 공동 집단체였다. 후세에 이르러 규율이 퇴폐 (頹廢) 졌을 규율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여러 가지 서약이 첨가되었다. 그리하여 결과적으로는 수도원이 짜임새 있게 설계된 감옥처럼 되어 버렸다. 점차로 서약 이외에도 여러 가지 지켜야 종교상의 의식들이 가하여 졌다. 이런 속박의 조건들이 교회의 법규에 반하여 많은 미성년자들에게도 굴레를 씌우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불행과 부덕스러운 추문이 생기게 되었다.

    지난날에는 수도원들이 성서 연구의 학원이었고  기타 유익한 학문의 전당이었다. 그리고 목사와 감독들을 배출하기도 하였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배우기 위하여 수도원에 모여 들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수도원 생활이 하나님의 은혜와 의를 얻기 위하여 설정된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우리들의 가르침은 다음과 같다.

    첫째, 결혼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들은 이렇게 가르친다. 독신생활을 하기에 합당치 못하는 사람은 결혼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본다. 그것은 어떤 서약도 하나님의 명령과 제도를 무효로 만들 없기 때문이다.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아내를 두고...." (고전 7: 2)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명령이다. 이것은 단순한 명령일 분만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제도이다.

    둘째로 청년 남녀들은 그들의 판단력이 성장하기 전에 이미 서약하도록 설득을 당하며, 때로는 강제로 행하도록 만들어졌다. 자발적으로 심사숙고하여 서약하는 것이 아닐진대, 서약의 의무를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것은 정당하다고 없다. 서약의 본질에 반대할 있는 권리는 만인에게 허락되어 있다.

    교회의 많은 법규들은 15 이전에 행한 서약을 무효로 돌리고 있다. 수년을 추가하여 18 전에 행하는 서약을 금하고 있다. 대다수의 수도사들은 수도원을 떠나려고 하는 이유를 가지고 있다. 본래 그들의 대부분은 적령기에 도달하기 전에 서약을 했기 때문이다.

     28 교권 (敎權) 관하여 (Von der Bischofen Gewalt)

    독의 권한에 관하여 과에 논쟁이 벌어졌었고 감독 가운데서 더러는 교회의 힘과 무력 (武力) 부당하게 혼동하기도 하였다. 이런 혼동으로 인하여 전쟁과 소동이 일어났다. 다른 한편 교황들은 그리스도에 의하여 주어진 이른바 열쇠의 힘에 의지하여 예배의 새로운 형태를 제정하고, 사면 선언의 보류와 포학 (暴虐) 파문에 의하여 양심을 괴롭게 했을 뿐만 아니라, 이세상의 왕국을 마음대로 이양하며 제왕의 주권을 탈취하려고까지 시도하였다.  오래 전부터 경건한 학자들에의해 이런 비행들이 규탄받아 왔다.

    그러므로 교회의 권력과 세속정부의 권력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교회의 권력은 복음을 증거하고 성례를 집행할 사명을 위임받고 있다. 교권이 다른 분야의 직무를  침범하거나, 세상 나라를 변혁시키거나 위정자의 법률을 폐지하거나, 합법저인 복종을 폐기시키거나, 어떤 행정 규정이나 제약에 관계된 판결에 대하여 간섭하거나, 어떤 형태의 국가가 세워져야 것이라는 점에 관한 법률을 위정자에게 지령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국가 행정권은 교회의 통치권으로부터 구별되지 않으면 안된다.  

3.감리교 25개조 종교강령(1784, John Wesley)   

 

   리교 종교의 강령에 대해

  영국 성공회는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을 중심으로 1553 42개조 종교강령을, 1562 39개조 종교강령을 발표했다.
  1784
웨슬리(John Wesley) 영국 성공회의 39개조 종교강령을 25개조로 줄여서 감리회 종교강령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했다. 웨슬리는 39개조 중에서 칼뱅의 예정론이 들어간 17, 칼뱅의 출교정신을 반영한 33, 영국국교로서 영국 성공회가 세속권세에 복종할 것을 강조하는 37 모두 14개조를 삭제하고 25개조로 감리회의 종교강령을 확정했다.
종교의 강령
1 삼위일체를 믿음
 
영생하시고 진실하신 하나님 분만 계시니 그는 영원무궁 하시고 무형무상하시며 권능과 지혜와 인자하심이 한이 없으시고 유형 무형한 만물을 한결같이 창조하시고 보관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성품의 일체 안에 동일한 본질과 권능과 영생으로 되신 삼위가 계시니 성부와 성자와 성신이시다.

2 말씀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심
 
성자는 참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이요, 성부와 동일하신 본질인데 복받은 동정녀의 태중에서 사람의 성품을 가지셨으므로 순전한 성품 하나님의 성품과 사람의 성품이 나뉘지 못하게 일위 안에 합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참으로 하나님이시요, 참으로 사람이신 그리스도이신데 참으로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매장되시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아버지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한 제물이 되시었다. 이는 사람의 원죄만 위할 아니라 범죄한 것까지 위함이시다.

3 그리스도의 부활
 
그리스도께서 과연 죽은 가운데서 다시 일어나시어 완전한 인성이 붙은 모든 것과 육체를 다시 가지시고 천당에 오르시며 마지막 날에 만민을 심판하시려고 재림하실 때까지 거기 앉아 계시다.

4 성신
 
성신은 성부와 성자께로부터 오신 위이신데 본질과 위엄과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동일하시고 참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5 성경이 구원에 족함
 
성경은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포함하였으므로 무엇이든지 성경에서 없는 것이나 그로 증험하지 못할 것은 아무 사람에게든지 신앙의 조건으로 믿으라고 하거나 구원받기에 필요한 것으로 여기라고 못할 것이다. 성경이라는 것은 구약과 신약의 법전을 가리킴이니 말씀의 참됨을 교회에서 의심없이 아는 것이다.
 
법전의 모든 책의 이름은 아래와 같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 4대선지서, 12소선지서와 보통으로 인증하는 신약의 모든 책을 우리도 법전으로 여긴다.

6 구약은 신약과 서로 반대되는 것이 없음
대개 신격과 인격이 겸비하여 하나님과 인류 사이에 홀로 하나인 중보가 되신 그리스도께서 영생을 허락하신 것은 신구약에 동일하게 있으므로 옛날 조상들이 잠깐 동안 허락을 바라보았다 하는 사람의 말을 들어 좇을 것이 없다. 하나님께서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예법과 의식에 관한 법률은 그리스도인을 속박하지 못하고 모세의 민법에 관한 교훈도 어느 나라에서든지 당연히 채용할 필요가 없을 것이나 어떤 그리스도인이든지 도덕이라 일컫는 계명을 순복하지 아니하지 못할 것이다.

7 원죄
원죄는(펠레지인들의 망녕된 말같이) 아담을 따라 죄를 범하는 것이 아니요, 아담의 자손으로는 사람의 천연적 성품이 부패한 것을 가르침인데 대개 인류가 근본적 의에서 멀리 떠나 성품이 죄악으로 치우치는 것이다.

8 자유의지
아담이 범죄한 이후로 인류의 정형이 그와 같이 되어 자기의 천연적 능력과 사업으로서 마음으로 돌이키며 준비하여 신앙에 이르러 하나님을 경모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시는 선한 의지를 얻게 하시는 은혜가 아니면 우리가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받으실 만한 선한 사업을 행할 능력이 없고 선한 의지가 우리에게 있을 때에는 은혜가 우리와 함께 한다.

9 사람을 의롭게 하심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의롭다하심을 얻은 것은 오직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음이요, 우리의 행한 것이나 당연히 얻을 것을 인함이 아니다.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만 의롭다함을 얻는다 하는 것이 가장 유익하고 위로가 넘치는 도리이다.

10 선행
선행은 비록 믿음의 열매요, 또한 의롭다하심을 따라 오는 것이로되 능히 우리의 죄를 없이하지 못하며 또한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에 위엄하심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선행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받으실 만하고 기뻐하시는 바요, 참되고 활발한 신앙으로 좇아 나오는 것인즉 열매를 보고 나무를 아는 같이 선행을 보고 활발한 신앙이 있는 것을 밝히는 것이다.

11 의무 외의 사업
하나님의 계명 밖에 자원하여 행하는 일을 의무 외의 사업이라 하는데 이는 오만하고 불경건한 사람만이 하는 말이니 여기 대하여는 사람들이 말하기를 자기가 하나님께 당연히 바를 다하였을 뿐더러 하나님을 위하여 의무가 요구하는 것보다 하였다 하나 그리스도께서 여기에 대하여 밝히 말씀하시기를 너희에게 명한 것을 행하되 말할 때에 무익한 종이라 하라 하시었다.

12 의롭다하심을 얻은 후의 범죄
 
의롭다하심을 얻은 후에 고의로 범하는 죄마다 성신을 거역하여 사유하심을 얻지 못할 죄는 아니다. 그러므로 의롭다함을 얻은 후에 죄에 빠지는 사람에게 회개함을 허락하시는 은혜를 얻지 못한다 할것이 아니요, 우리가 성신을 받은 후라도 얻은 은혜를 배반하고 죄에 빠졌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일어나 우리의 생활을 개정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세상에 거할 동안에 그들이 죄를 범하지 못한다 하는 자들이나 죄를 범한 뒤에 참으로 회개할지라도 사유하심을 얻지 못한다 하는 자들은 정죄하심을 당할 것이다.

13 교회
유형한 그리스도 교회는 믿는 이들의 모인 공회니 가운데서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며 그리스도의 명령하신 것을 따라 성례를 정당히 행한다. 모든 필요한 일이 교회를 요구하는 것이다.

14 연옥
 
연옥과 사죄와 우상과 유물에 경배하고 존중함과 성도에게 축도함에 관한 로마교의 도리는 허망하고 위조한 것이다. 성경에 빙거할 없을 뿐더러 하나님의 말씀에 반항하는 것이다.

15 회중에서 해득할 방언을
 
예배당에서 공중 기도할 때에나 성례를 행할 때에 교우가 알아들을 없는 방언을 쓰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초대교회의 규례를 분명히 위반하는 것이다.

16 성례
그리스도의 설립하신 성례는 그리스도인의 공인하는 표적과 증거가 뿐더러 더욱 은혜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향하시는 선한 의지의 확실한 표니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묵묵히 역사하시어 우리의 신앙이 활동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 더욱 굳게 하는 것이다.
 
복음에 우리 그리스도의 설립하신 성례가 둘이 있으니 세례와 주의 만찬이다. 견신례와 참회와 신품과 혼인과 도유식들 다섯가지를 성례라 하나 이는 복음적 성례로 여기지 못할 것이다. 가운데 어떤 부분은 사도의 도를 오해하므로 것이요, 어떤 부분은 성경에 허락하신 생활의 정형으로 것이다. 그러하나 하나님께서 명하신 드러나는 표적과 의식이 없으므로 세례와 주의 만찬과 같은 성질이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설립하신 성례는 우리로 하여금 응시나 하든가 휴대하고 다니라는 것이 아니요, 우리로 하여금 적당히 사용하게 하심이다. 그러므로 성례를 합당하게 받는 이에게만 유익한 결과와 효력이 있고 합당치 아니하게 받는 이는 사도 바울이 말씀한 바와 같이 자기에게 정죄함을 받는 것이다.

17 세례
세례는 공인하는 표와 그리스도인을 세례받지 아니한 사람과 분별하게 하는 표적이 뿐더러 중생 신생의 표가 되는 것이요, 어린이에게 세례를 행하는 것도 교회에 보존할 것이다.

18 주의 만찬
 
주의 만찬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당연히 있을 사랑을 표한 것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속하신 성례이다.
 
그러므로 옳고 합당하고 믿음으로 받는 이들에게는 떼인 떡을 먹는 것이 그리스도의 몸을 먹는 것이요, 또한 이와 같이 복된 잔을 마시는 것도 그리스도의 피를 마시는 것이다. 변체, 주의 만찬의 떡과 포도즙의 물체가 변화한다함은 성경으로 증거할 없을 아니라 도리어 성경의 명백한 말씀을 거스리며 성례의 뜻을 그르침이요, 이로 인하여 미신이 많이 생긴다.
 
만찬 때에 그리스도의 몸을 주고 받아 먹는 것은 천국적, 신령적 방법으로만 것이요,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 먹는 방법은 오직 신앙이다. 만찬의 성례를 유치함과 휴대하고 다님과 거양함과 경배함은 그리스도의 명하신 것이 아니다.

19 떡과 포도즙
 
평신도에게 주의 마심을 거절하지 못할 것이다. 대개 그리스도의 규례와 명령대로 주의 만찬에 가지를 일반 그리스도교인에 같이 행하는 것이 당연하다.


20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제물이 되심
 
그리스도께서 제물로 드리신 것이 세계의 모든 원죄와 범죄를 위하여 완전한 구속과 화목과 보상이 되었은즉 밖에 다른 속죄법이 없다.
이러므로 「미사」제를 드리며 거기에 대하여 보통으로 말하기를 신부가 그리스도를 제물로 드리어 이와 죽은 이의 고통과 범죄를 면하게 한다 함은 참람된 광언이요, 위태한 궤계이다.

21 목사의 혼인
 
하나님의 법률에 그리스도교의 목사들은 독신생활하기를 맹세하라든가 혼인을 금하라든가 하신 명령이 없다. 그러하므로 목사들도 모든 그리스도인과 같이 자기의 뜻에 경건하다고 생각하면 혼인하는 것이 마땅하다.

22 교회의 예법과 의식
 
예법과 의식을 곳에서 동일하게 필요는 없다. 대개 예법과 의식은 예로부터 같지 아니하였고 나라와 시대와 민족의 풍속을 따라 변할 있으나 다만 하나님의 말씀과 틀리게 하지 못할 것이다. 어떠한 사람이든지 자기가 소속한 교회에서 만들어 보통 실행하기로 인정하였고 하나님의 말씀과 틀림이 없는 예법과 의식을 사사 주견으로 짐짓 드러나게 파괴하는 이를 책벌하되 교회의 통용하는 법을 반항하는 것과 연약한 형제의 양심을 상하게 이도 처벌할 것이다. 이는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두려워하여 그와 같이 하지 못하게 함이다.
 
교회마다 예법과 의식을 만들기도 하며 고치기도 하고 혹은 폐지하기도 하여 모든 일이 교훈이 되게 것이다.

23 북미 합중국 통치
대통령과 국회와 주립 의회와 지사와 내각은 인민의 대표로 연방 헌법과 헌법에 의하여 북미 합중국의 통치자들이다. 합중국은 주권적 독립국이므로 어떤 외국 치리하에 붙지 아니할 것이다.

24 그리스도인의 재산
그리스도인의 보물과 재산을 가질 권리와 가질 일에 대하여는 어떤 사람이 허망하게 자랑함과 같이 공통하게 통용할 것이 아니다. 그러하나 사람은 마땅히 자기의 소유를 가지고 힘대로 가난한 이들에게 너그럽게 구제할 것이다.

25 그리스도인의 맹세
우리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 야고보가 그리스도인이 헛되고 경홀히 맹세하는 것을 금지하신 것을 우리가 공인하거니와 어떤 사람이 관장에게 요구함을 당할 때에 믿음과 사랑으로 인하여 맹세하는 것은 그리스도교 교리에 금지함이 없는 줄로 생각한다. 다만 선지자의 교훈대로 공의와 주견과 참됨으로 것이다.

 

4.웨스트 민스터 신앙고백(1943-46)-Westerminister Confession

 

웨스터민스터에서 제정된 장로교회의 신앙고백서, 영국과 스코틀랜드의 교리적 통일 및  대륙의 개혁과 교회와의 연결을 목적으로 작성된 것으로 1643-47년에 만들어 졌으며 47년에 영국에서 49년에 스코틀랜드에서 인준을 받았다.

제 1장: 성경에 관하여

1. 이성의 빛과 창조의 세계와 섭리를 볼 때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핑계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의 선하심과 지혜와 능력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로는 구원을 위해서 필수적인 하나님의 지식과 하나님의 뜻에 대한 지식에 우리는 결코 도달할 수 없다.  그래서 주께서는 여러기회에 , 그리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기 자신을 계시하셨고, 이 계시를 교회에 대한 자신의 뜻이라고 선포하시기를 기뻐 하셨다.  그리고 주께서는 그 후 이계시를 기록으로 남기시기를 기뻐 하셨는데, 그 이유는 진리를 더 잘 보존하고 전파하시기 위함이요, 육신의 부패와 사단과 이 세상의 악에 대항하여 교회를 더 확고하게 세우고 위로하기 위함이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성경은 꼭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자기의 뜻을 자기 백성에게 계시해 주시던 구약의 방법은 이미 끝났다

 

5.남침례교회 신앙고백(1925, 1963년개정)

1. 성경에 관하여

거룩한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하심에 의하여 사람들이 기록한 것이며,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에대한 계시의 기록이다.  성경의 저자는 하나님 이시며, 목적은 구원이며, 오류가 섞이지 않는 진리가 담겨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시는 원리들을 계시하신다.  따라서 그것은 세상 끝까지 기독교 일치의 참된 중심으로 존재할 것이며, 모든 인간의 행위, 신조, 종교적 견해들을 판단할 최고의 표준이 될 것이다.   성경을 해석하는 기준은 예수그리스도가 되어야 한다.

6.성경무오류설에 관한 시카고선언(1978)

    이 시대 및 모든 시대 기독교회가 지닌 중요한 문제는 성경의 권위와 관련된 것이었다.   예수그리스도를 주요 구주로 믿는 신앙을 고백    하는 사람들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겸손하고 충성되게 복종함으로서 자신이 제자됨의 실체를 나타내 보이라는 부름을 받는다.  믿음    이나 행위에 있어서 성경에서 벋어나는 것은 주님께 불충하는 것이다.  성경의 권위를 완전히 파악하고 그 권위를 제대로 고백하기 위해    서는 성경의 전적 진리와 신뢰성을 인정 하여야 한다.

    기독교 신앙의 어떤 기본 요소라도 자필의 부재로 인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우리는 부인한다.   나아가 이와같은 부재 때문에 성경 무    오류성을 주장하는 것이 부당하거나 타당성이 없다는 주장도 부인한다.

    다음의 성명은 성서의 무오류성을 확인하며, 그에대한 우리의 이해 및 그것을 부인하는 데 대한 경고를 분명히 한다.  우리는 성경 무오    류성을 부인하는 데 대한 경고를 분명히 한다.  우리는 성경 무오류성을 부인하는 것은 곧 예수그리스도와 성령의 증거를 무시하는 것이    며 기독교의 믿음을 참돤 것으로 만들어 주는 하나님의 말씀의 주장에 순복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우리는 오늘날 동료 기독교인 들 사이에서 이 교리가 오해되고 있는데 직면하여 이것을 확인하는 것이 이시대 우리의 의무라고 여긴다.

 

6.로잔선언

(이 언약은 1974년 7월 16일부터 25일까지 스위스 로잔에서 모였던 세계 복음화 국제대회의 대표 3,700여명(150여 국가로부터 모였음)이 합의하고 서명한 것이다. 이 글의 초안은 세계적인 복음주의자 존 스토트가 작성하였다).

 

머리말 (Introduction)
로잔에서 열린 세계 복음화 국제대회에 참가하기 위하여 150여개국으로부터 모여온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의 지체인 우리들은 크신 구원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자신과의 교제와 우리들 상호간에 교제를 가지게 하심을 기뻐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시대에 행하시는 일에 깊은 감동을 받으며 우리가 저질러온 갖가지의 실패를 통회하고 아직 미완성으로 남아 있는 복음화의 과업에 도전을 받는다. 우리는 복음이 온 세계를 위한 하나님의 좋은 소식임을 믿으며 이 복음을 온 인류에게 선포하여 모든 민족으로 제자 삼으라 분부하신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할 것을 그의 은혜로 결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에게 이 신앙과 이 결단을 확인하고 우리의 이 언약의 공포하려 한다.

하나님의 목적 (The purpose of God)
우리는 세계의 창조자이시며 주되신 영원한 한분 하나님 곧 성부, 성자, 성령에 대한 우리의 신앙을 확인한다. 하나님은 그의 뜻의 목적에 따라 만물을 통치하신다. 그는 자기를 위하여 세상으로부터 한 백성을 불러내시며 다시금 그들을 세상으로 내보내시어 그의 나라의 확장과 그리스도의 몸의 건설과 그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그 부름받은 백성들을 그의 종들과 증인이 되게 하신다.
우리는 왕왕 세상과 동화되든가 혹은 절연됨으로 우리의 소명을 부인하고 우리의 선교 사명에 실패하였음을 부끄러움을 무릎쓰고 고백한다. 그러나 복음은 비록 질그릇에 담겼을지라도 귀중한 보화임을 기뻐하며 이 보화를 성령의 능력으로 널리 알게 하는 과업에 우리 자신을 새롭게 헌신하려고 한다.
(사40:28, 마28:19, 엡1:11, 행15:14, 요17:6, 18, 엡4:12, 고전5:10, 롬12:2, 고후4:7)

성경의 권위와 능력 (The authority and power of the Bible)
우리는 신구약성경이 하나님에 의하여 영감되었음과 그 참됨과 권위를 믿는다. 성경은 그 전체에 있어서 하나님의 유일한 기록된 말씀으로서 그 모든 가르치는 바에 있어서 착오가 없으며, 신앙과 행위에 대하여 유일의 정확 무오한 법칙임을 믿는다. 하나님의 말씀은 또한 그의 구원의 목적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성경말씀은 온 인류를 위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는 불변하기 때문이다. 그 계시를 통하여 성령은 오늘도 말씀하신다. 성령은 어느 문화 속에 있든지 모든 하나님의 백성의 마음을 깨우치사 이 진리를 그들의 눈으로 친히 새롭게 보게 하시고 하나님의 여러 가지 모양의 지혜를 온 교회에 더욱더 풍성하게 나타내신다.
(딤후3:16, 벧후1:21, 요10:35, 사55:11, 고전1:21, 롬1:16, 마5:17, , 18, 유3, 엡1:17, 8,, 3:10, 18)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보편성 (the uniqueness and universality of Christ)
우리는 전도의 방법은 여러 가지이나 구주도 오직 한분이요 복음도 오직 하나임을 확인한다. 우리는 자연에 나타난 하나님의 일반계시를 통해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에 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이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들이 이 것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주장을 거부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그의 불의로써 진리를 억압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또한 여하한 형태의 혼합주의와 그리스도께서 어떤 종교나 어떤 이데올로기를 통해서도 똑같이 말씀하신다는 뜻에서 진행된 대화는 그리스도와 복음을 손상시키므로 이를 거부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일하신 신인(神人)으로서 죄인을 위한 유일한 대속물로서 자신을 주시었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의 중보자이시다. 예수의 이름 외에 우리가 구원받을 다른 이름은 없다. 죄로 인하여모든 사람이 멸망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어 한 사람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가 회개할 것을 원하신다. 그럼에도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자는 구원의 기쁨을 거부하며 스스로 정죄함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떠난다.
예수를 "세계의 구주"로 전한다 해서, 반드시 모든 사람이 자동적으로 혹은 궁극적으로 구원받게 되는 것은 아니며 더구나 모든 종교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을 제공한다고 보장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예수를 "세계의 구주"로 전한다고 하는 것은 오히려 죄인들의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선포하는 것이며 마음을 다한 회개와 신앙에 의한 인격적 헌신으로 예수를 구주로 맞이하도록 모든 사람을 초대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다른 이름위에 높임을 받아 왔으며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사람이 그 앞에 무릎을 꿇게 되고 모든 입이 그를 주로서 고백하게 되는 날을 간절히 고대한다.
(갈1: 6-9, 롬1:8-32, 딤전2:5, 6, 행4:12, 요3:16-19, 벧후3:9. 살후1:7-9, 요4:42, 마11:28, 엡1:20, 21, 빌2:9 -11)

전도의 본질 (The nature of evangelism)
전도한다는 것은 기쁜 소식을 널리 퍼뜨리는 것인데, 기쁜 소식이라 함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죽은 자로부터 다시 살아나시어 통치하시는 주로서 그는 지금도 회개하고 믿는 모든 자들에게 사죄와 성령의 자유케 하시는 은사를 공급하신다는 것이다. 전도에 있어서 세계 속의 그리스도인의 현존은 불가결한 것이며, 또한 이해하기 위하여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대화도 없는 수는 없다. 그러나 전도 그 자체는 역사적 성서적 그리스도를 구주요 주로서 선포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그에게 개인적으로 와서 하나님과 화목함을 얻도록 설득하는 일이다. 복음의 초대를 함에 있어 제자된 값을 치러야 한다는 일을 감출수는 없다. 예수께서는 오늘도 당신을 따르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의 새 공동체에 속하였음을 분명히 하도록 부르신다. 전도의 결과는 그리스도께의 순종, 그의 교회와의 협력, 세상 안에서의 책임있는 봉사를 포함한다.
(고전 15:3, 4, 행2:32 -39, 요20:21, 고전1:23, 고후4:5, 5:11, 20, 눅14:25-33, 막8:34, 행2:40, 478, 막
10:43-45)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 (Christian social responsibility)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사람의 창조자이신 동시에 심판자이심을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 사회 어디서나 정의와 화해를 구현하시고 인간을 모든 종류의 압박에서 해방시키려는 하나님의 권념에 참여하여야 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에 인종, 종교, 피부빛, 문화, 계급, 성 또는 연령의 구별없이 모든 사람이 타고난 존엄성을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사람은 서로 존경받고 섬김을 받아야 하며 누구나 착취당해서는 안된다. 이 점을 우리는 등한시하여 왔고, 또는 왕왕 전도와 사회 참여가 서로 상반되는 것으로 잘못 생각한데 대하여 참회한다. 사람과의 화해가 곧 하나님과의 화해가 아니며, 사회 행동이 곧 전도는 아니며, 정치적 해방이 곧 구원은 아닐지라도, 전도와 사회-정치적 참여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의무의 두가지 부분이라는 것을 우리는 인정한다. 왜냐하면 이 두가지는 다같이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우리의 교리, 우리 이웃을 위한 우리의 사랑,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순종의 필수적 표현들이기 때문이다. 구원의 메시지는 모든 종류의 소외와 압박과 차별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를 내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과 부정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이것을 공박하는 일을 무서워해서는 안된다.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면 그의 나라에 다시 태어난다(중생함을 받는다). 따라서 그들은 불의한 세상 속에서도 그 나라의 의를 나타낼 뿐만 아니라 전파하기에 힘써야 한다. 우리가 주장하는 구원은 우리의 개인적 그리고 사회적 책임을 총체적으로 수행하도록 우리를 변화시켜는 것이어야 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행17:26, 31, 창18:35, 사1:17, 시465:7, 창1:26, 27, 약3:9, 레19:18, 눅6:27, 35, 약2:14-26, 요3:3, 5, 마5:20, 6:33, 고후3:18, 약2:20)

교회와 전도 (The church and evangelism)

아버지께서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과 같이 그리스도는 그의 구속받은 백성들을 세상으로 보내시는 것을 우리는 확인한다. 이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과 같이 세상으로 깊고도 희생적인 침투를 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우리의 교회적 "울타리"를 트고 넘어서 비기독교 사회에 침투해 들어가야 한다. 교회가 희생적으로 해야 할 일 가운데 전도는 최우선적인 것이다.
세계 전도는 전체 교회로 하여금 전체 복음을 전세계에 전파함을 요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우주적 목적을 바로 중심에 서 있으며 복음을 전파할 목적으로 그가 지정하신 수단이다. 그러나 십자가를 설교하는 교회는 스스로 십자가의 흔적을 지녀야 한다.
교회가 만일 복음을 배반하든가, 하나님을 향한 산 믿음이 없다든가, 사람들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없든가, 사업 추진과 재정 등 모든 일에 있어서의 철저한 정직성이 결여될 때 교회는 오히려 전도의 장애물이 되어 버린다. 따라서 어떤 특정한 문화적 사회적 또는 정치적 체제들이나 인간의 이데올로기와 동일시되어서는 안된다.
(요17:18, 20:21, 마28:19, 20, 행1:8, 20:27, 엡1:9, 10, 3:9-11, 갈6:14, 17, 고후 6:3,4, 딤후2:19-21, 빌1:27)

전도를 위한 협력 (Cooperation in evangelism)
교회가 진리 안에서 가견적 일체성을 이룩하는 일이 하나님의 목적임을 우리는 확인한다. 전도는 또한 우리를 하나가 되도록 부른다. 왜냐하면 우리의 불일치가 우리가 전하는 화해의 복음을 무너뜨리고 마는 것처럼 우리의 하나됨은 우리의 증거를 더욱 힘있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직적 일치가 여러 가지 모양을 띨 수가 있고 또 그것이 반드시 전도를 증진시키는 것이 아니란 것도 우리는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성서적 신앙을 함께하는 우리들은 교제와 일과 증거에 있어서 긴밀하게 일치 단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의 증거가 때로는 죄악된 개인주의와 불필요한 중첩으로 인하여 저해를 받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우리는 고백한다. 우리는 진리와 에배와 거룩함과 선교에 있어서 좀더 깊은 일치를 추구할 것을 약속한다. 교회의 선교를 촉진하기 위해서, 전략적 계획을 위해서, 상호간의 격려를 위해서 그리고 자원과 경험을 서로 나누기 위해서 지역적이며 기능적인 협력을 발전시킬 것을 우리는 촉구한다.
(요13:35, 17:21, 23, 엡4: 3, 4, 빌1: 27요17:11-23)

전도와 문화 (Evangelism and culture)
세계 전도 전략의 개발에는 대담한 개척적 방법이 요청된다. 하나님 아래서 세계 전도의 결과로 그리스도 안에 깊이 뿌리 박히고 동시에 각각의 문화에 밀접히 관련된 여러 교회들이 일어날 것이다. 문화는 항상 성경을 표준으로 해서 검토되고 판단받아야 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피조물인고로 인간 문화의 어떤 것은 대단히 아름답고 선하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그 전부가 죄로 물들었고 어떤 것은 악마적이다. 복음은 어떤 문화가 다른 문화보다 우월하다고 전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복음은 모든 문화를 그 자체의 진리와 정의를 표준으로 해서 평가하고 모든 문화에 있어서 도덕적 절대성을 주장한다.
선교는 이제까지 복음과 함께 이질적 문화를 수술하는 일이 너무나 많았다. 그리하여 교회는 왕왕 성경에 매이기보다 문화에 매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스도의 전도자는 겸손하게 자기를 전체로서 비어버리기를 힘써야 한다. 다만 그의 인격의 가장 진정한 것만 남겨 가져서 다른 사람들의 종이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문화는 문화를 변형(변혁)시키고 풍요하게 만들기에 힘쓰되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만 한다.
(막7:8,9,13, 창:21, 22, 고전 9:19-23, 빌2:5-7, 고후4:5)

자유와 핍박 (Freedom and persecution)
모든 정부는 교회가 간섭하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주 그리스도를 섬기며, 복음을 전파하도록 평화와 정의와 자유의 상태를 보장해야 할 의무를 하나님께로부터 받고 있다 .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나라의 지도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그들이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고 하나님의 뜻으르 따라, 그리고 유엔 인권선언에 규정한 바와 같이 종교를 믿으며 전파할 자유를 보장해 줄 것을 요청한다. 우리는 또한 부당하게 투옥된 사람들, 특히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함으로 고난받는 우리 형제들을 위하여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 우리는 그들의 자유를 위하여 기도하며 일할 것을 약속한다. 동시에 우리는 그들의 운명에 의하여 유발되는 협박을 거부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매 우리는 무슨 희생을 치르더라도 불의에 항거하며 복음에 충성하기를 힘 쓸 것이다. 핍박이 없을 수 없다는 예수님의 경고를 우리는 잊어버리지 않는다.
(딤전1:1-4, 행4:19, 5:2, 골3:24, 히13:1-3, 눅4:18, 갈5:11, 6:12, 마5:10-12, 요15:18-21)

맺는말 (Conclusion)
그러므로 이와같은 우리의 신앙과 우리의 결심에 비추어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또 우리 상호간에 전 세계의 복음화를 위해서 함께 기도하고, 계획하고, 일할 것을 엄숙히 언약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도 우리와 함께 할 것을 호소한다. 하나님께서 그의 은혜로서 그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의 이 언약에 충실하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우시기를 기도한다. 아멘, 할렐루야